대학로 데이트 염장글

  이런 글은 제목부터 일직선. 이번 주말의 데이트는 오랜만에 대학로였습니다. 토요일 밤의 대학로는 과연 사람들로 북적이더군요.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쉬이 피곤해지기에 기본적으로는 인파를 피해 다니는 편이지만, 가끔씩은 사람 많은 곳도 흥취가 있어 좋습니다. 더군다나 여름 저녁은 더더욱 그렇죠. 비닐 팩에다 만들어 주는 길거리 칵테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이런저런 군것질거리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군것질은 부차적인 것이고, 대학로하면 일단 소극장이지요.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라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연극이 보고 싶어서 라이어2를 선택했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의 속편인지라 많은 분들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틀은 전편과 동일했지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신나게 웃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웃으면서 보는 타입입니다마는, 그녀는 아예 연극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내내 숨넘어가도록 웃더군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답니다.

  천성이 게으른 탓인지 원래 방구석에서 데굴거리기를 좋아하는 데다 요즘은 푹푹 찔 정도로 더워서 더 그러고 있지만, 사실 이맘때야말로 저녁시간대에 나가서 놀기 좋은 계절입니다. 실재로도 대학로의 밤거리는 온통 커플들로 북적이더라고요. 커플부대 중 특히 저처럼 게으른 남자 분들. 만날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을 거냐는 잔소리를 듣기 전에 연인의 손을 꼬옥 잡고 어디라도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그러셔야지요?

by 글곰 | 2009/06/28 22:31 | 글곰, 일상을 이야기하다 | 트랙백 | 덧글(2)

줄리 마네의 초상

  줄리 마네(Julie Manet)는 유명한 인상주의파 화가 마네의 조카입니다. 남동생의 딸이지요. 제가 그녀에 대해 아는 건 이게 전부이며,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불과 이틀 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녀의 이름을 꺼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르누아르가 그린 그녀의 초상화, [줄리 마네의 초상 Portrait de Julie Manet]이 너무나도 빼어난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직장에서 행사가 있어 서울시립미술관의 르누아르 전시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이 그림을 본 순간 자리에 못박히듯 멈춰설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이 순간적으로 온 몸을 정화시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 그림의 존재감은 실로 압도적입니다. 물론 가격이나 유명세가 더 높은 작품들도 함께 있습니다만, 그런 하찮은 것들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이 그림 안에 있습니다. 가슴 속 어딘가에서 까닭 모를 슬픔이 느껴질 정도로 이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림 파일을 하나 첨부하지만, 기회가 되는 분들은 꼭 전시회에 가서 실물을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언드립니다.

by 글곰 | 2009/06/28 00:24 | 글곰, 취미생활을 하다 | 트랙백 | 덧글(4)

추억은 잊어 주세요, 그러나 잊히지 않는 추억도 있어

  예전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책이 생각나서 퇴근길에 서점에 들렀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읽다 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은 참 멋졌는데, 다시 보니 이게 이렇게까지 촌스러운 만화였던가? 마찬가지로 예전에 꽤 감명을 받으며 플레이한 게임이 있었다. 거진 몇 년만에 다시 플레이하게 되었는데 아뿔싸, 이렇게까지 낯간지러운 게임이었던가. 책장에 주르르 꽂혀 있는 책들 가운데서도 그런 것들이 종종 있다. 그들을 보며 예전에는 내가 이런 걸 좋다고 읽었단 말이지, 하면서 한숨을 내쉬곤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창회에서 이십 년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 그이가 배불뚝이 아저씨였을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많은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퇴색되버리곤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시간이 지나도 퇴색은커녕 먼지조차 앉지 않는 추억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러기에 때로 삶은 즐거운 것이고. 하지만 그 사실을 오늘은 오히려 슬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10년 전과 비교하여 전혀 퇴색되지 않은 노래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Heal the world. 그러나 마이클, 당신은 더 이상 이런 곡을 만들지 못하게 되어 버렸군요.

by 글곰 | 2009/06/26 23:59 | 글곰은 중얼중얼 | 트랙백 | 덧글(0)

퇴근 후 맥주 한 잔

  어제, 지리한 야근 후 퇴근길에 슬몃 맥주가 땡겼다. 그리고 언젠가 증정품으로 받아서 냉장고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아사히 캔맥주가 생각났다. 룰루랄라, 맛있는 아사히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맥주를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피곤한 날 밤 잠들기 전에 마시는 맥주 한 캔은 거의 신의 선물이나 다름없다. 돌아와서 찐득찐득한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몸을 안락의자에 투척! 노곤하고도 행복한 표정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 캔을 꺼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감촉만으로도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일 정도였다. 그런 행복감에 푹 잠긴 채로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맥주 캔을 돌려 보았다. 정말 별다른 생각 없이.

 유통기한 : 2008년 8월

  ....올해가 몇년도더라?

by 글곰 | 2009/06/24 23:59 | 글곰은 중얼중얼 | 트랙백 | 덧글(4)

하루키는 왜 복잡해지고 있을까?

  하루키가 오랜만에 낸 새 장편소설이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어둠의 저편(애프터다크)]야 때려죽여도 장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분량이었으니, [해변의 카프카]부터 계산하면 7년만인 셈이다. 그 신작의 제목은 [1Q84]. 9는 일본어로 '큐'라고 읽으니, 아마도 [1984]와 [아Q정전]을 합친 말장난이 틀림없다.

  물론 번역이 될 테고, 물론 나는 사서 읽을 것이다. 하루키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왜냐면 지금의 하루키는 예전의 하루키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적어도 나는 지금의 하루키는 예전의 하루키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작가든 간에 작품을 낼 때마다 작풍이 조금씩 변한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시간을 지내는 동안의 경험과 사색으로 인해 작가 자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또한 심각한 문제는, 하루키의 변화가 내 취향에서 엇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더군다나 명쾌하게 써내는 능력이 있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양을 쫓는 모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들은 내게 설득력을 주었고 나는 작품 속에 매몰되다시피하며 글을 읽었다. 오케이,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뭔가 부족한 듯했지만 괜찮았다. [댄스 댄스 댄스]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요소와 상당히 싫어하는 요소가 혼재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았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읽을 만했다.
 
  그러나 [해변의 카프카]는 내게는 끔찍했다. 비유와 상징이 과도하게 들어가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 비유와 상징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은 국제적인 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받았는지 모르겠다. 하루키는 명쾌한 이야기를 불명확하게 쓰기 시작했다. 단순한 이야기를 복잡하게 쓰기 시작했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애먼 해골들이 등장하고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주인공이 기묘한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기미가 보였지만, [해변의 카프카]에서 거의 극에 다다랐다 싶을 정도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과연 이번 작품은 어떨지 모르겠다. 물론 하루키가 그 젊은 시절의 작품으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 그러나 나는 어쩐지, [해변의 카프카] 이후의 하루키는 하루키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아마도 아무런 의미 없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by 글곰 | 2009/06/23 23:36 | 글곰, 취미생활을 하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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