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9월 06일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이의 사랑 고백
가을인데도 시절을 모르고 여태껏 이 땅에 들러붙어 있는 더위 탓에, 어쩔 수 없이 창을 활짝 열어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서울 특유의 시커먼 먼지가 잔뜩 들어오는 게 싫어 어지간하면 창을 닫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더웠다. 하여 시원한 밤바람과, 그에 실려오는 옆집의 떠들썩한 소리 속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옆집 남편이 집에 친구를 데려와서 함께 취했는지 내내 창 너머가 시끌벅적했다. 그래도 묘하게도 밉지 않은 요란스러움이었다. 그러다 문득 남편이 목청을 높여 외쳤다. '마누라! 사랑해! 알라뷰! 고마워!' 그러고는 스스로도 쑥스러웠는가 보다. 바로 '헤헤. 고백했다.' 하고 다소 작은 목소리로 부끄러운 듯 말을 이은 다음에는 잠시 동안 조용했다. 씨익. 양 입술 끝자락이 절로 올라갔다.
조선 중기 이래로 왜곡된 성리학이 물결치며 강렬한 가부장제가 이 땅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 폐해를 여성들만이 짊어진 것은 아니다. 이 땅의 남정네들은 그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사회는 그들에게,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표현조차 때때로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하여 삼십대 중반 이상의 남자들은 모든 감정을 속으로 삭히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그에 따랐다. 신해철의 말마따나,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건 머리가 아니라 몸 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행동 양식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과격해지는 사람들이 이 땅에 유독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성에 의해 내내 억눌려 있던 감정이 알코올의 도움으로 강하게 뻗어 나오는 것이다. 물론 과격한 주정꾼들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술의 힘을 빌어 마누라, 사랑해! 라고 외치는 정도라면 싱긋 웃으며 봐줄 만도 하지 않은가? 이럴 때의 술은 옛 사람들이 누누이 찬양해 왔던 미덕으로 그득하다. 좋지 않은가.
조선 중기 이래로 왜곡된 성리학이 물결치며 강렬한 가부장제가 이 땅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 폐해를 여성들만이 짊어진 것은 아니다. 이 땅의 남정네들은 그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사회는 그들에게,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표현조차 때때로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하여 삼십대 중반 이상의 남자들은 모든 감정을 속으로 삭히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그에 따랐다. 신해철의 말마따나,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건 머리가 아니라 몸 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행동 양식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과격해지는 사람들이 이 땅에 유독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성에 의해 내내 억눌려 있던 감정이 알코올의 도움으로 강하게 뻗어 나오는 것이다. 물론 과격한 주정꾼들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술의 힘을 빌어 마누라, 사랑해! 라고 외치는 정도라면 싱긋 웃으며 봐줄 만도 하지 않은가? 이럴 때의 술은 옛 사람들이 누누이 찬양해 왔던 미덕으로 그득하다. 좋지 않은가.
# by | 2005/09/06 00:26 | 글곰, 사색에 잠기다 | 트랙백(2) | 덧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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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글이네요!!!
귀엽잖아요.
남자란,자고로 택택거려도 알고 보면 참 여린 존재더군요. 여자의 말 한마디에도 웃었다 울었다 하는...
다만 안으로 깊숙히 감정을 담고 입에 주름이 생기도록 깊은 인상을 쓰고 있을 뿐이지요. 자신의 약한 모습이 들통날까봐.
확실히 그래요.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것에 너무나도 서투릅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렇고, 저 역시 그렇습니다.
헤프게 표현하는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가끔씩은 표현해야겠더군요. 저런 표현하나로 주변인들이 행복해한다면 남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지금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막 상상이 됐어요.
저같아도 조금 웃음이 나왔을 것 같아요. ^^
우리 아버지는 조용조용,,,하면서도 사랑 표현을 많이 하세요.
연세가 드시면서 더,,,
제가 일주일치 장을 보아서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면,,,
뭘 또 그렇게 많이 사와,,,하시며 역정을 내시지만,,,
그건 막내달이 갸날픈 몸으로 돈 벌어다 그렇게 쓰는일에 안스러워 하는 감정이 묻어있죠.
하지만 사다 둔 과일이며 간식 거리들,영양제들, 빠뜨리지 않고 꼬옥 챙겨 드시는 걸 보면 행복해요.
그거야 뭐...술의 대표적인 악덕이지요. 후훗.
/lukesky 님.
예. 평소에도 저렇게 말할 수 있으면 더 멋진 세상이 될 텐데요. 하지만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겠지요?
/탁상 님.
예. 많습니다.
/dogy 님.
후훗.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jenu 님.
뭐...귀엽다는 표현이 아마 어울릴 겁니다. 사실은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싱긋)
/구루미 님.
하하...어쩌면 아내되는 분은, '또 술주정이야!'하고 면박을 주셨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으셨겠지요?
/퍼플 님.
하핫...그렇습니다.
/기린아 님.
그렇게밖에 애정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슬프고 안된 일이지요. 하지만 그래도 저런 가벼운 주정이라면, 폭력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원씨 님.
익숙해지시는 게 좋습니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셔야지요. 후훗.
그래도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사람이지요. 더군다나 이 땅의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런걸요. 하지만 역시 좀 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후훗.
/세피로스 님.
원래 남자란 인상 쓰고 짐짓 심각한 척 하는 게 특기입니다. 하지만 귀여운지는 잘 모르겠어요.(싱긋)
/ellen 님.
긍정적인 면에서 솔직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은, 아마도 술의 가장 큰 미덕일 겁니다. 그래서 제가 술을 좋아하지요.
/k. e. p. t 님.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장사겠지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저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물론 술 마시고 옷 벗고 댄스...같은 건 말고요. 후훗.
/SARA☆ 님.
사실 저도 맨정신으로 고백하는 게 더 좋습니다만... 그게 또 힘들거든요. 이 땅의 남자들을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히힛.
하핫...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술이 좋은 거지요. 과하지만 않는다면요.
/바람 님.
어떤 분인지 눈에 그려질 듯합니다. 사실 저희 아버지도, 역정을 내시는 걸로 사랑을 표현하시는 경우가 잦거든요. 예전에는 그게 싫었지만 지금은 익숙해졌어요. 후훗...
/바이트 알 님.
그럼 저도 오늘, 술이나 마시고 주정을...
주정할 상대가 없어욧! 엉엉엉.
5살때 오토바이 머플러에 그 여린 허벅지를 데였는데도 입을 꽉 다울고 울지 않아 나중에 엄마가 말씀하시길 "참 안스러웠다"라고 하셨다더군요 .
여자는 태어나는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지만 ..
남자도 제대로 된 감정 표현을 억제받으며 자란다는 건 참 우울하죠 .
예. 맞습니다. 좋은 노래에요.(독백에 더 가까울까요?)
/라야 님.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지만, 사실상 그 말은 남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만들어지는 거지요. 기준에 맞춰서. 우웅.
주사가 저정도인 사람들만 산다면
술에 대한 규제가 없어질텐데
(어이 그런주제의 포스팅이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