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별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별 헤는 밤]을 달달 외우면서 은근히 남들에게 뻐기고 다니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랑하기 위해서 바락바락 외운 건 아니고, 구태여 암기하려 들지 않더라도 자주 읽다 보면 저절로 외워지니 말이다. 위낙에 시라는 것이 대개 짧지 않던가. 노래가사 외우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지 않은가. 그렇다면 시를 외우는 것도 그리 벅찰 노릇은 아닌 게다. 다만 [별 헤는 밤]은 꽤 긴 축에 속하는 시인데, 그러다 보니 어린 마음에 얼마간은 뿌듯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여튼 [별 헤는 밤]은 짜릿짜릿할 정도로 좋은 시다.

  그러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참 재미없게 생긴 책이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90년대 후반에는 희멀건 표지의 두툼한 국어책이 상하권으로 나누어져 2년 동안 배우게 되어 있었다. 시 수업은 환장하도록 재미없었다. 아아 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님에 빨간 색 동그라미 치고 조국, 혹은 절대자, 혹은 부처라고 메모. 시적 자아의 목소리는 여성적. 주제는 조국의 독립. 기타 등등 어쩌구저쩌구.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바람에 밑줄 쫙. 바람은 시적 화자를 괴롭게 하는 현실이거나 혹은 고난을 상징. 이러니 시에 흥미가 갈 리 있나. 특히 김춘수는 원망의 대상이었다. 이상을 증오하지 않게 된 건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그 징글맞은 시들이 정말이지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는 것을 느낀 건 대학교에 와서였다. 그렇다고 내가 시 관련 수업을 들었거나 한 건 아니다. 나는 명색 국문과로되, 애당초 시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다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지겹게 공부했던 그 시들이, 한 연 한 행마다 덕지덕지 붙여놓았던 수험용 메모를 훌훌 털어내고서 말이다.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랄까나. 그리하여 나는 어느 순간엔가 불현듯 새삼스레 깨달은 것이다. 아아. 정말이지 시는 좋구나.

  시를 공부한다는 건 참 곤란하도록 난해한 일이다. 그러나 단지 시를 즐기는 것은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행복한 일이다. 내 시험 공부 과목에 국어가 들어 있다 보니 자연 시도 같이 공부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덧 공부는 까맣게 잊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를 감상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있다. 애당초 교과서나 교재에 실린 시라는 것들은, 그 사조나 형식을 불문하고 많은 비평가들을 감탄시키면서 명시의 반열에 오른 것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중 마음에 드는 시 한둘을 찾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노릇이다.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왜 사냐건 웃지요.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내 여기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어느 곳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어디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산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마음에 꼭 드는 시, 그러니까 저 위에 나열한 시들을 읽을 때면 몸 속에서 스믈스믈 차오르는 어떤 기묘한 감각이 있다. 근면성실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문학적 환희라고 점잖게 표현하겠지만, 지극히 속된 나로서는 그것이 꼭 성적 쾌감과도 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저 위대한 시인들에게 죄송스럽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다. 그게 아니고서야, 짜릿한 감각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관통하는 듯한 그 멋진 쾌감에 비할 것을 찾기란 참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시를 읽으면서 하악하악 탁탁탁을 해대는 건 아니고. 어쨌든 그렇다. 내게 시라는 건 그런 거다. 황홀하도록 짜릿짜릿한 것. 때로는 그런 기쁨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이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이 글을 쓴다. 글을 마치며,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시 하나를 덧붙인다.


     반성 100 / 김영승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를 못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by 글곰 | 2007/03/18 03:49 | 글곰, 사색에 잠기다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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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나무피리의 하얀사과빛 .. at 2007/03/19 22:07

제목 : 시를 향한 짝사랑
시(詩)(by 글곰) 시라는, 그 뭐라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건 내겐 정말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일처럼 어설플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시가 좋아요" 하고 써놓으면, 어쩐지 시를 향해 쭈뼛쭈뼛 고백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때는 지금 교과서들처럼 시가 많이 수록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글곰님의 글에도 있지만 갖가지 토를 달고 시 속의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해서 밑줄 쫙 별표 네개 이런 식......more

Commented by 연어 at 2007/03/18 11:13
자기 전에 시를 하나씩 외우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날 시를 회만 치고 살다보니 원래 시는 어떤 것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네요..
Commented by 사은 at 2007/03/19 05:02
교과서에서나 수업 때 배운 시, 혹은 시집에 있기 때문에, 유명하기 때문에, 하는 이유로 읽었던 시들에는 전연 감명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시를 읽다가 확 공감하고 공명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는 일이 2년 전부턴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올려주신 시도 그렇게 뭔가 짜릿함이랄까, 그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지는군요. 하아! :)
Commented by 히바나 at 2007/03/19 20:24
정말 좋은 시를 감상하는 법을 학교가 잊게 한다며 한탄하시던 국어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사실은 마음가짐의 문제인것 같네요.
Commented by 복숭아 at 2007/03/21 00:51
고등학교 때 정지용의 유리창을 보면서 질질 운 적이 있네요. 오히려 수업 시간에 딱딱한 분위기에서라도 시를 읽는 것이, 좋은 시를 많이 접하게 하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해요. 교과서에 없었다면 몰랐을 시가 대부분인지라... 소설은 찾아 읽어도 시는 그렇지 않게 되거든요.
Commented by 보클레어 at 2007/03/27 19:30
고등학교 시절 시를 시로서만 대하다가 언어영역 때문에 재수를 했지요^^;; 글곰님의 '황홀하도록 짜릿짜릿한 것'이라는 표현에 정말 공감이 가네요. 좋은 시 한 편이 주는 짜릿한 감동을 어디에 비하겠습니까. 그런 시들을 먹어 치울 수록 자꾸 시에 대한 식탐이 도지지요. 한편 교과서에 나오는 현대시들도 그렇지만 고전시가들도 마음을 후비고 들어오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처음 '제 망매가'를 읽던 그 때의 느낌은 아직도 잘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덧붙여 링크 신고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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