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와 진실

  시험공부를 할 때, 행정학 과목에서 내부고발자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부고발자란 어떠한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이 그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이지요. 예. 이번 삼성 비자금 및 로비 의혹 사건의 김용철 변호사가 대표적인 내부고발자 되겠습니다.

  행정학에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4대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신변보호, 신분보장, 책임 및 형의 감면, 보상입니다. 행정학 책을 내다버려서 저게 정확한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만 대강 비슷할 겁니다. 아무튼 그 내용을 세세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내부고발자가 원할 경우 익명성을 반드시 보장하며 또한 해당 조직의 보복으로부터 내부고발자를 보호해 줄 것. 둘째, 내부고발자가 그 행위로써 조직 내에서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할 것. 셋째, 내부고발자가 고발한 비리에 내부고발자 자신도 연루되어 있을 경우 그 책임을 경감하거나 면제해 줄 것. 넷째, 내부고발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 줄 것.

  이런 원칙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내부고발자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방증해 줍니다. 내부고발자는 으레 [조직을 배신한 자]로 낙인찍히기 마련이며, 해고나 징계 등 각종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조직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중요시하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내부고발자로서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고 나선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쫓겨났을 뿐더러 사회의 시선조차 적대적입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합니까?

  종류를 막론하고 조직이란 비대해질수록 비리가 많아집니다. 기업, 종교단체, 자선단체, 국제기구, 공공기관 등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런 비리는 대개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칩니다. 그러나 조직 내 비리를 외부에서 알기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삼성 같은 단단하고 강력한 기업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해당 조직의 구성원이 그 비리를 외부에 폭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국가는 내부고발자를 장려하고 보호합니다. 미국에는 소위 [링컨법]이라고 불리는 내부고발자 보호법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부패방지법]이라고 하여 관련 법률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법률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만.

  내부고발자의 고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폭로의 진실성입니다. 여기서 내부고발자가 어떤 사람이냐, 폭로의 동기가 무엇이냐 등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상정해 보지요.
  부패공무원 김 과장은 상사와 함께 거액의 뇌물을 받아 반으로 나누어 꿀꺽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상사가 자기보다 더 많이 받아 챙긴 겁니다. 김 과장은 상사를 찾아가 반반씩 나누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지만 상사는 무시했습니다. 여기에 앙심을 품은 김 과장은 뇌물 관련 비리를 고발해 버렸습니다.
  이런 경우라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단지 그 고발의 진실성 여부일 뿐입니다. 김 과장이 뇌물을 받아먹었건 아니건, 평소 생활이 깨끗했건 아니건, 고발의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말입니다. 그리하여 공범일 경우라도 책임을 감면해 주고 또는 보상까지 해 주는 것입니다. 보다 큰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내부고발자의 죄를 깎아 주는 셈이지요. 여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습니다마는, 내부고발의 순기능을 생각해 볼 때 합당하다 여겨집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변호사가 이혼을 했든, 삼성에서 백억이나 되는 돈을 급료로 받았든,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된 고발이든 아니든 간에 그런 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고발 내용과 그 사실 여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백억이나 받아먹고도 조직을 배반한 의리도 없는 놈]이고, [이혼까지 한 걸 보면 믿을 수 없는 놈]이며, [삼성에서 나간 다음에야 비리를 폭로한 치사한 놈]이고, 그렇기 때문에 [삼성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합니다. 글쎄요. 그렇습니까?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있을 때 월급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 폭로는 사실이 아니라는 논리는 지나치게 치졸하지 않습니까?

  제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진실과, 그 진실에 합당한 국가적-사회적 대처입니다.

by 글곰 | 2007/11/06 10:29 | 글곰, 세상을 두드리다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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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at 2007/11/1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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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베릴 at 2007/11/06 10:42
동감합니다. 중앙일보를 보고 있는데 한동안 일언반구도 없다가 오늘보니 기사를 싣긴 했는데 방향이 딱 그렇더군요. 고발한 놈이 더 나쁜 놈.
Commented by 루모스 at 2007/11/06 15:16
저도 동감합니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데 일단 반박문은 만들어야겠고, 삼성 내부에서 고생 좀 했을 것 같더군요.
Commented by 섬백 at 2007/11/06 17:33
100억이나 받고 삼성에서 나간 다음에야 배반하다니 이것 참 똑똑하신 분이네요 [...]
Commented by 글곰 at 2007/11/07 09:53
/섬백 님.
똑똑하지요. 그런데 불법에 가담하면서 100억이나 받고 삼성에서 나간 다음에야 폭로한 사람이, 불법에 가담하면서 100억이나 받고 삼성에서 나간 다음에도 가만히 있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사회에 더 많은 공헌을 하는 게 사실이지요.
Commented by 희휘 at 2007/11/27 00:19
기업윤리 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레포트로 내부고발자에 대해서 쓰고 있습니다. 기업 쪽을 찾아야 되는데, 기업 쪽은 흔한데다 머리 아픈 대기업들이 위주고, 공직 쪽은 상당히 많더군요; 중소기업 쪽은 거의 전무한 거 같아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위의 글곰님이 섬백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에 동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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