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하루] 09. 교목 / 이육사

교목 /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

  육사의 시는 그 자신이 살아온 삶의 문학적 결정체라 할 만하다. 그 자신의 시와 행적이 일치하지 않아 서글픈 시인이 청마(靑馬)라면, 언행일치의 화신과도 같은 시인이 바로 육사(陸史)가 아닌가. 현실의 무게 앞에 수많은 이들이 무릎을 꿇었고 개중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글과 이름과 양심을 도매금으로 팔아넘긴 이들이 횡횡했던 가운데, 육사는 만 사십 년도 되지 않는 생애 동안 열일곱 차례나 감옥에 드나들면서 서릿발처럼 곧고 바른 삶을 세웠다. 그가 남긴 시는 그가 살아온 햇수만큼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 그러나 그 삶은 그의 시편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지금껏 흔들림 없이 우뚝 서 있다.

  좋은 시를 쓴 시인은 많다. 그러나 시와 함께 그의 삶도 함께 존경받을 만한 시인은 드물다. 육사는 그 드문 시인 중에서도 단연 손꼽을 만하다. 나는 육사의 시를 읽다 보면 문득 백석의 시구(詩句)가 생각난다. 그렇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다.

by 글곰 | 2007/11/08 21:20 | ☞詩가 있는 하루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sipdae.egloos.com/tb/347585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