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의 꿈

  어릴 때의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어린이들의 장래 목표에서 항상 수위권에 드는 직업이지요. 지금도 고향 본가의 제 방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괴발개발 엉망으로 그린 미래의 우주여행 상상도가 액자에 넣어져 벽에 붙어 있습니다. 크레파스로 그린 후 수채물감으로 채색.

  아마도 중학교 때부터인가 미래의 꿈이 바뀌었습니다. 상세히 설명하자니 쑥스럽고, 아무튼 간단히 말하자면 공무원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린 제 인생 설계도의 아웃라인은 아직 유효합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기 나와서 뭐 할 거냐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입학한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꿈의 한 조각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리고 저는 때때로 자괴감을 느낍니다.

  시민들은 공무원들을, 속된 말로 조지면 기뻐합니다. 공무원 기구를 줄이고 인원을 감축하고 월급을 동결시키면 환호합니다. 공무원의 대우가 좋아진다는 소식을 기꺼워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초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속한 이 집단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죽어 마땅한 것일까요.

  구차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 자신이 꿈꾸고 이루어낸 어떤 것이 부정당할 때마다 다른 이들이 기뻐한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직접 체험한 순간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업무나 나날이 길어지는 퇴근시간, 수직적이고 경직적인 철저한 조직 문화보다도 공무원에 대한 시민들의 근원적인 부정과 이에서 비롯된 자괴감이 저를 훨씬 더 힘들게 합니다.

by 글곰 | 2008/05/05 00:42 | 글곰, 자신을 말하다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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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5/05 01: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5/05 01: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ㅂㅂㅂ at 2008/05/05 01:35
지금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정말로 답답합니다. 박봉에 열심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든 공무원님들 국민들은 신의직장 신의 직장 하지만 대체 신의 직장이 뭐란 말입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국민들은 신문이나 매스컴에 나오는 겉모습만 보고 공무원이 엄청 편하고 좋은 자리인줄 알고 착각하죠. 공무원은 단지 국가를 위해 일하는 직장인일 뿐입니다. 국가적인 권력을 누리는 부류는 그중에 1%로 안되죠, 국회의원, 대통령, 각부처 장관 기타등등 그외 모든 공무원님들은 가족들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일하고 헌신하며 국민들을 위해 봉사합니다. 정치가도 기업인도 아닙니다. 어떠한 권력도 없습니다. 그저 지역사회와 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것뿐이죠.
Commented by 실꾸리 at 2008/05/05 11:21
저도 공무원에 대하여 그런 선입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만, 막상 가족 가운데 공무원이 생기니까 사정이 달라지더군요...공무원이라고해서 모두 다 보수 한나라당인 것도 아니고, 공무원이 8시간 근무를 딱 지키는 것도 아니며, 공무원이 고위직에 철밥통도 아니라는 것을....힘내십시오...
Commented by 똘똘이스머프 at 2008/05/05 11:33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꾸준히 열심히 일해 나가면 언젠간 알아 주시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뇌를씻어내자 at 2008/05/06 11:15
너무 자괴감에 빠지진 마세요. 일부 때문에 전체가 흐려지는 건 공무원뿐 아니라 어느 조직에나 있는 일이니까요. 물론 공무원과 일반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가령 연봉인상이라든가 국민연금이라든가 하는)은 존재하겠지만, 그것도 사실 깊이 있는 이해가 바탕되지 않은 상태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거고요. 힘내세요!
Commented by 지나가는곰 at 2008/05/10 20:30
ㅂㅂㅂ님 참 이상하네요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라..

한가지 국민의 세금으로 밥을 먹고 돈을 버는거 잖아요.
직장인은 잘못하면 돈을 주는 사장에게 잔소리 하는거 아닌가요?
공부원에 월급은 국민이 주는거 아닌가요.

당연히 세금을 내고 있으니 잘못된 부분이있으면 싫은 소리도 할수 있는거 아닌가요?
공무원이란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가 생각해보세요
사전에는 이렇게 나왔네요
국민의 대표자·수임자로서 국민 전체에 봉사하고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을 본질로 하며, 법적으로는 국민의 법적 조직체인 국가기관의 구성자요, 국가조직의 인적 요소·법적 단위로서 특별한 법적 지위가 인정되고 있다.

국민 전체에 봉사하고 라고 적혀있습니다. 그 봉사를 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거 아닌가요

公 공평할 공
務 힘쓸 무, 업신여길 모
員 인원 원, 더할 운



또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중 야근하고 수당철저하게 받는 직업이 어디있을까요..
그만큼 국민은 관대하게 공부원 일한만큼 돈을 줍니다.

일만 시키고 돈 안주는 사장도 있습니다.
국민이 월급 3개월 밀려 안준적있습니까

Commented by phice at 2008/06/23 14:45
어느 직업이든 목적이 흐릿해지면 슬프죠
사실 공무원이라고 특별히 사명감이 투철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공무원이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점이 있는 것도 사실.
수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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