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냥요

  동생이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데려오기 전에 잠시나마 마찰이 있었다. 나는 고양이를 싫어한다. 정말 싫다. 매우 싫다. 무척 싫다. 개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들을 좋아하지만 고양이는 싫다. 그래서 동생이 물었다. 오빠는 왜 고양이를 싫어하는데? 나는 대답했다.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 따위가 없어. 좋다, 싫다가 먼저 오고, 그 다음에야 그 감정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아내려 노력하는 거야.

  솔직히 저 말이 항상 진실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겠다. 하지만 본능적인 호불호라는 것도 분명 존재하지 않는가 말이다.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은 건 싫은 거다. 거기에 굳이 논리 정연한 까닭까지 찾아야 할 필요는 없다. 왜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해요? 책을 좋아하니까요. 왜 책을 좋아해요? 책 읽는 게 좋으니까요. 왜 책 읽는 게 좋아요? 이런 젠장. 운동하는 건 왜 싫어해요? 몸 움직이는 게 싫어서요. 왜 몸 움직이는 게 싫어요? 오냐, 아까부터 꼬박꼬박 시비인데 어디 나랑 한 판 붙어보자.

  그러므로 열렬히 연애하는 커플에게 상대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것은 분명 우문(愚問)이요, ‘그냥요’라는 불성실해 보이는 대답은 흔히 진실이다.

by 글곰 | 2008/05/25 01:27 | 글곰, 사색에 잠기다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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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무피리 at 2008/05/25 01:56
'이유없이' 싫어하는 건 어떤 게 있을까 생각했더니 꽤나 많은걸요^^;;;
모호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지만 그냥, 이라는 말은 꽤 솔직한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Commented by 글곰 at 2008/06/01 23:57
의외로 솔직한 말이랍니다.
생각하기 귀찮아서 그냥 내뱉는 말인 건 아니라고요.
아니, 사실 가끔씩은 그럴 때도 있긴 하지만....에헴 에헴.
Commented by Adelto at 2008/05/26 19:53
며칠 전 가네시로 카즈키의 책 몇권을 읽었습니다. 그 책들 어디선가에서는 이런 대사가 있더군요.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해. 하지만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아."


문득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제가 이런 의견이란 건 아니구요 ㅎ.
Commented by 글곰 at 2008/06/02 00:07
으음. 그 양반의 말에 따르면 좋아함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싫어함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함의 반대는 무관심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끄덕끄덕)
Commented by 저격자 at 2008/05/27 10:54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정말로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세상은 정말 험악해지는걸요.
만약....싫어하는 데 이유가 필요없다면...흑인이 싫어. 이유는 없어. 그냥. ....이런 아주 안좋은 조건이 성립되어버리니까요.
Commented by Adelto at 2008/05/31 22:08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그러나 그런 올바른 생각을 의중에 두고 한 소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phice at 2008/06/23 14:32
진심으로 좋은 것과 진심으로 싫은 것은 이유가 있어도 말하기 귀찮은 경우도 많구요 아 좋으니까 좋다는데 뭐 어쩌라고 시끄러 같은 모드? (허허)
Commented by Alyssa at 2008/08/12 14:44
정말은 "그냥요"가 진실인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신에 전 강아지가 그냥 싫습니다. 이유를 대자면 이것저것 줏어 담겠지만 강아지(개)가 싫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지나가는 길 고양이도 그저 못 지나치지요.
이유를 대라면 그냥 좋으니까- 라고 할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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