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인네

  여기 평범하고 소심한 여인네가 있다. 언제나 잡다한 걱정이 많고, 덤벼들기보다는 움츠리고, 쉽게 긴장하고 종종 초조해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소심하다. 그런 모습이 세상 평지풍파에 주눅이 든 것만 같아 나는 괜스레 꿀밤을 콩콩 먹이곤 한다. 그래도 능력 있어 어느새 재취업을 하더니마는 갑작스레 미국으로 두 주일짜리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영어를 못한다느니, 환율이 비싸다드니,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 하루 전까지 쓸데없이 걱정하고 하염없이 초조해하며 이리저리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기에 그만 얄미워서 하여튼 이놈의 소심함, 마구 때려줄 테다! 했더니 입이 댓 발이나 삐죽 나왔다. 그러나 뾰로통해져 봤자 어쩔 것인가. 그러던 여인네가 어느덧 출장 마지막 날이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미국 가서는 멀쩡하게 일 열심히 잘 하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거 봐라. 막상 닥치면 잘 하지 않느냐, 하고 나는 혼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출장 가기 전보다 조금쯤은 더 용감해지고 대범해진 것 같다. 에헴. 하여튼 두 주일 가량 얼굴을 못 보다 보니 이 소심한 여인네가 그립다. 많이 그립다. 하여 오늘 저녁에는 인천공항으로 마중을 가련다. 출장 가서 일 잘 해낸 것이 기특해서라도 꼬옥 안아줄 테다. 소심한, 하지만 어쩄거나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는 나의 여자친구를.

by 글곰 | 2008/10/18 02:36 | 글곰은 중얼중얼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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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고 at 2008/10/18 02:50
소심함이 어떤 일의 '실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지만, 그 소심함을 치료하는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수단이 '실행'이라는 사실은 참 재미있지요^^; 경험이 내공을 쌓고, 내공이 소심함을 걷어내고, 그렇게 줄어든 소심함이 또 다른 경험의 밑거름이 되는 시스템이랄까요 ㅋ; 소심함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해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염장글'이군요(...)
Commented by 글곰 at 2008/10/25 01:11
아아. 정답입니다. 끊임없는 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순환 매커니즘 자체를 박살내는 수밖에 없지요.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변한다고나 할까요.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염장글이지요. 우훗.
Commented by Luckybear at 2008/10/18 14:55
소심함의 극복이 주제가 아니라 여자친구분에 대한 자랑글같군요..ㅋㅋ. 누군가가 좋아지면 그 사람의 모든것이 좋아보이고, 대견해보이기도 하죠. 흐믓하다고나 할까요.. 제가 주변을 보면 소심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행도 잘하고 몰입도 잘하는데 예외를 벋어나는데 익숙치 않은거 같던데요..^^
Commented by 글곰 at 2008/10/25 01:12
음...... 염장글입니다. 그리고 아직 극복은 아니에요. 조금 낫다... 정도랄까요. 저 정도로는 저는 아직 만족하지 못합니다. 우핫.
Commented by 太虛 at 2008/10/19 01:51
주제는 태그....
Commented by 글곰 at 2008/10/25 01:12
딩동! 정답입니다. 100점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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