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23일
하루키는 왜 복잡해지고 있을까?
하루키가 오랜만에 낸 새 장편소설이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어둠의 저편(애프터다크)]야 때려죽여도 장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분량이었으니, [해변의 카프카]부터 계산하면 7년만인 셈이다. 그 신작의 제목은 [1Q84]. 9는 일본어로 '큐'라고 읽으니, 아마도 [1984]와 [아Q정전]을 합친 말장난이 틀림없다.
물론 번역이 될 테고, 물론 나는 사서 읽을 것이다. 하루키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왜냐면 지금의 하루키는 예전의 하루키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적어도 나는 지금의 하루키는 예전의 하루키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작가든 간에 작품을 낼 때마다 작풍이 조금씩 변한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시간을 지내는 동안의 경험과 사색으로 인해 작가 자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또한 심각한 문제는, 하루키의 변화가 내 취향에서 엇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더군다나 명쾌하게 써내는 능력이 있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양을 쫓는 모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들은 내게 설득력을 주었고 나는 작품 속에 매몰되다시피하며 글을 읽었다. 오케이,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뭔가 부족한 듯했지만 괜찮았다. [댄스 댄스 댄스]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요소와 상당히 싫어하는 요소가 혼재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았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읽을 만했다.
그러나 [해변의 카프카]는 내게는 끔찍했다. 비유와 상징이 과도하게 들어가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 비유와 상징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은 국제적인 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받았는지 모르겠다. 하루키는 명쾌한 이야기를 불명확하게 쓰기 시작했다. 단순한 이야기를 복잡하게 쓰기 시작했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애먼 해골들이 등장하고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주인공이 기묘한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기미가 보였지만, [해변의 카프카]에서 거의 극에 다다랐다 싶을 정도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과연 이번 작품은 어떨지 모르겠다. 물론 하루키가 그 젊은 시절의 작품으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 그러나 나는 어쩐지, [해변의 카프카] 이후의 하루키는 하루키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아마도 아무런 의미 없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물론 번역이 될 테고, 물론 나는 사서 읽을 것이다. 하루키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왜냐면 지금의 하루키는 예전의 하루키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적어도 나는 지금의 하루키는 예전의 하루키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작가든 간에 작품을 낼 때마다 작풍이 조금씩 변한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시간을 지내는 동안의 경험과 사색으로 인해 작가 자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또한 심각한 문제는, 하루키의 변화가 내 취향에서 엇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더군다나 명쾌하게 써내는 능력이 있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양을 쫓는 모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들은 내게 설득력을 주었고 나는 작품 속에 매몰되다시피하며 글을 읽었다. 오케이,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뭔가 부족한 듯했지만 괜찮았다. [댄스 댄스 댄스]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요소와 상당히 싫어하는 요소가 혼재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았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읽을 만했다.
그러나 [해변의 카프카]는 내게는 끔찍했다. 비유와 상징이 과도하게 들어가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 비유와 상징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은 국제적인 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받았는지 모르겠다. 하루키는 명쾌한 이야기를 불명확하게 쓰기 시작했다. 단순한 이야기를 복잡하게 쓰기 시작했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애먼 해골들이 등장하고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주인공이 기묘한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기미가 보였지만, [해변의 카프카]에서 거의 극에 다다랐다 싶을 정도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과연 이번 작품은 어떨지 모르겠다. 물론 하루키가 그 젊은 시절의 작품으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 그러나 나는 어쩐지, [해변의 카프카] 이후의 하루키는 하루키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아마도 아무런 의미 없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 by | 2009/06/23 23:36 | 글곰, 취미생활을 하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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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까지는 참을수 있었지만, 저는 어둠의 저편이 더 끔찍했던걸로 기억해요. ㅠㅠㅠㅠㅠ
뭔가 좀 묘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묘해지기 전에 끝나 버렸으니까요.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