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4일차

  오전에는 요코하마 시청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재미없는 일 이야기니까 자세한 내용은 생략. 시청 근처에서 밥을 먹은 후에 JR전철을 타고 도쿄로 올라왔습니다. 호텔은 인터넷으로 예약한 TOKO HOTEL TOKYO라는 곳입니다. 체크인하러 들어가서 Hello 한마디 던지고 바우처와 여권을 주섬주섬 꺼내는데 카운터 저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한국분이세요?' 그 한국인 직원분 덕분에 다소 이른 시간에 체크인이 가능했습니다. 짐을 방에다 올려 놓고 조그만 가방 하나만 둘러멘 채 호텔을 뛰쳐나왔습니다. 목적지는 오다이바. 

  신바시에서 유리카모메 일일이용권을 끊어 오다이바로 들어갔습니다. 유리카모메는 고가 레일 위를 운항하는 무인전차인데, 일반 전차와는 달리 타이어 바퀴더군요. 꽤 신기해하면서 탔습니다. 복합 쇼핑몰은 전혀 제 취향이 아니지만 시간이 좀 남는 바람에 눈요기나 할 겸 Decks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이게 대박이었습니다. 4층에 다이바잇초메라는 테마 상점가를 만들어 놓았는데 1960년대 도쿄를 재현해 놓았다고 합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에 도달하자마자 보이는 건 무려 일본 불량식품 가게. 정신이 아득해져옴과 동시에 제 두 발이 멋대로 움직여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불량식품을 사서는 결국 다 먹어 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옛날 분위기의 가게가 많았고 심지어는 귀신의 집까지 있더군요. 모든 가게를 다 둘러보았지만 귀신의 집만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정말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혼자 들어가려니 좀 무섭더라고요. 으흠. 다음에는 꼭 여자친구를 데리고 같이 오곘노라 다짐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이바잇초메를 신나게 돌아다니고, 다른 매장은 건성건성 둘러본 후 시간에 맞춰 오에도온센모노가타리(오에도 온천 이야기)라는 온천 테마파크로 향했습니다. 18시 이후에 입장하면 저녁 요금을 적용받거든요. 상당히 유명한 관광지인데 들어가니 일본어, 중국어, 영어에 한국어까지 4개 국어가 뒤섞여서 들려오더군요. 그래도 월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특별 요금 기간인가 해서 입장료를 할인하고 있더라고요. 요즘 장사가 잘 안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면서 1150엔을 지불한 후 유카타로 갈아입고 온천에 들어갔습니다. 

  뭐 온천은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좁으나마 노천탕도 준비되어 있어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맘껏 즐겼습니다. 재미있는 건 한국식 때밀이 서비스를 하고 있더군요.(아카스리, 라고 합니다) 단순히 때만 미는 건 아니고 마사지나 테라피 등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남탕인데도 불구하고 때밀이가 여자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팬티 하나만 덜렁 걸친 아저씨들의 등을 벅벅 미는 모습을 보니 뭐랄까...... 매우 신기하더라고요.  

  오에도온센모노가타레에는 테마파크답게 일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음식점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가격은 비쌉니다. 롯데월드 안에서 사먹는 핫도그가 비싼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그래도 온천욕을 즐기고 나면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른 것이 인지상정. 가벼운 지갑 사정은 잠시 잊고 일단 우동부터 한 그릇 훌훌 말아먹은 후, 가격표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생맥주 한 잔과 안주로 닭꼬지 네 개를 시켜서 잘 마시고 잘 먹었습니다. 그러고 있자니 극락이 따로 없더군요. 

  다만 아쉬운 건 역시 한국어가 사방에서 들려온다는 점. 사실 여행의 맛은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게 많지요.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외국어. 따라서 '나'와 타인간의 교류는 부쩍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그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면, 스스로의 내면에 대한 성찰입니다. 인간의 외향성이 내향성으로 전환되는 셈이지요. 저는 그게 여행의 참맛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아무래도 '신경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들리는 건 다소 불편합니다. 외로워질 수 없잖아요. 그런데 사실 이건 무려 '테마파크'를 갔다오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긴 합니다. 생선가게에 가서 왜 비린내가 나느냐고 투덜거리는 셈이네요.
  
  그래서일까요. 밤 아홉 시가 넘어서 온천을 나온 후 다시 유리카모메를 타고 돌아가다가, 갑작스럽게 밤 바다가 보고 싶어서 허둥지둥 오다이바가이힌코엔 역에서 내렸습니다. 건물을 돌아 계단을 내려가니 바로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사방에 가득찬 것은 쌍쌍이 앉은 커플과 커플과 커플과 커플들. 그 가운데 혼자인 것은 나와 순찰중인 경찰 뿐. 그러나 굴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소리가 생생히 들려오는 저 광활한 밤바다는 언제나 사람의 감정을 요동치게 합니다. 파도 철썩이는 해변에 서 있노라면 인간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새삼 깊게 깨닫곤 하지요. 그러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밤 바다는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산산조각났다가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또한 밤바다는 역설적으로 나 스스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깊이 세겨 줍니다. 나라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드러내 주는 것이지요.

  하여 멍하니 밤 바다를 바라보다 힘을 얻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온천을 통해 몸을 깨끗이 하고, 밤바다를 통해 마음을 씻어낸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내일은 좀 더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네요. 늦은 시간, 얼른 자고 내일은 내일의 여행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근데 외로움이고 자신과의 대면이고 나발이고 간에, 여자친구랑 같이 다니면 좋겠다아......

by 글곰 | 2009/09/08 01:11 | 글곰, 여행을 안내하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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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9/08 09: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글곰 at 2009/09/09 01:17
오다이바 좋더라. 좋아좋아. 눈이 반짝반짝~
내일 오다이바에서 비행기 타고 건너온 불량식품 줄게. 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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