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09일
일본 여행 5일차
호텔 복도 천장이 너무 낮아요. 천장을 가로지르는 서까래에 벌써 세 번이나 머리를 박았습니다. 쩝. 그나저나 오늘은 후회가 많은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교훈을 얻었지요. 첫째는 '여행은 체력이다.' 둘째는 '천천히 걷자'입니다.
어제 늦게 잤는데도 불구하고 호텔 모닝콜의 힘을 빌어 6시에 일어났습니다. 츠키지 시장을 가기 위해서였지요. 츠키지 시장은 거대한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대도시 도쿄에서 소비되는 생선 대부분이 여기서 거래됩니다. 츠키지 시장에 도착하니 일곱 시 반 가량. 참치 경매를 보고 싶었지만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도착하기 전에 끝난 모양이에요. 대신 시장통에서 참치를 해체하는 모습은 구경했습니다. 길이가 키만한 칼로 참치를 서걱서걱 토막내는 모습이 진짜 인상깊더군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참치가 아니라 역시 츠키지 시장의 역동적인 분위기일 겁니다. 하루하루를 그토록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저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시간쯤 시장을 기웃거린 후에 초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관광책자마다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모 유명 초밥집 앞에는 벌써 수십 명이 줄을 서고 있더군요. 어차피 소위 유명한 집에서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기에 주변의 적당히 붐비는 초밥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오오. 맛있더군요 정말. 그 두툼한 생선의 감칠맛이라니. 2625엔, 우리돈으로 삼만원이 넘는 거금이었지만 그때만큼은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동한 곳은 아사쿠사였습니다. 雷門(가미나리몬)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제등은 과연 유명할 만하더군요. 그러나 센소지는 전면적인 수리 중이었고, 그 외에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관광지였습니다. 다만 센소지로 가는 길(나카미세)에 늘어선 가게들은 일반 관광지 가게에 비해 조금쯤 격이 높은 느낌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은 특히 기모노와 유카타에 관심을 기울이더군요. 저도 유카타를 구경하다가 한 시간 이상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동한 곳은 아키하바라! 전자제품 상가로 유명한 동시에 일본 오덕군자들의 성지지요. 평소 꼭 가 보고 싶어하던 곳이기도 했기에 기대 만발이었습니다. 정처없이 얼마쯤 걷다 보니 사방팔방에 신기한 가게들이 가득 보이더군요. 할인제품 판매점인 돈키호테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못했던 스트리트 파이터 4도 플레이해본 후, 헐벗은 여인네들의 포스터로 뒤덮여 있는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예. 성인용 게임 및 AV(Adult Video) 가게입니다. 평일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꽤 되더군요. AV나 성인용 게임 패키지를 집어들고 유심히 살피는 손님의 눈빛은 그야말로 오덕의 광채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사이에 끼여서 이것저것 집어들고 살펴보다 나왔는데, 참 인상깊은 경험이었다고만 해 두겠습니다. 다만 구입은 안했습니다. 엔화가 너무 비싸요. 게임 소프트 가게 두어 곳과 역시 오덕들에게 명성 높은(그러나 실망이 컸던)GAMERZ 등도 둘러보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슬슬 허리가 아파오면서 체력부족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실수한 것이, 얌전히 호텔로 돌아가서 두세 시간쯤 쉰 후에 다시 나왔으면 아마도 훨씬 즐거운 여행이 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나 도쿄를 둘러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저는 강행군을 선택했습니다. 최악의 선택이었지요. 도쿄 역에서는 천왕이 살고 있는 황거에 가 보고 닌교쵸에서는 전통 먹자 골목을 돌아보았지만, 이미 체력은 바닥이라 머리가 멍하고 허리뿐만 아니라 다리까지 아픈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로 돌아다녔으니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리 만무했지요. 닌교쵸에서 오후 네 시쯤에 늦은 점심을 먹고 오늘의 여섯 번째 목적지인 신주쿠로 가는 전철을 다시 탔지만, 이미 반쯤 맛이 가 있던 저는 자리에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신주쿠에 도착하니 다섯 시 반. 해가 지기를 기다려 도쿄 최고의 환락가라는 가부키쵸 거리를 꼭 걸어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겨우 막 깨어나기 시작한 초저녁의 가부키쵸를 둘러본 후 결국 두 손 들고 호텔로 복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삐끼 한 사람은 만나보았으니 최소한의 경험은 해본 셈입니다. '스트립쇼 구경하세요'를 일본어,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말하는 사십대 아저씨였지요.
하여 호텔에 도착해서 내처 쉬었습니다. 그러다 밤이 깊어지고 체력도 회복되니 다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5초쯤 고민한 후 다시 옷을 입고는 바로 호텔을 뛰쳐나왔습니다. 목적지는 도쿄타워. 볼 것은 도쿄의 야경! 도쿄타워는 남산타워와는 달리 썰렁하게 맨땅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과는 달리 산이나 언덕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도쿄다 보니, 지상 백미터만 올라가도 사방이 훤히 보이는 것이 시원해서 좋더군요. 전망대에서 도쿄 시내 구석구석을 살피며 많은 것들을 머리와 가슴에 담고 내려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네 라면집에 들려서 국물이 구수한 라면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맛있더군요!
이제 내일이면 일본과도 작별입니다. 그리고 모레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겠네요. 오늘은 무척이나 피곤하지만, 어쩐지 잠이 안 올 것 같습니다. 문득 창밖을 보니 새벽 한 시인데도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살아 있네요. 이제 저는 짐을 챙겨야겠습니다.
# by | 2009/09/09 01:16 | 글곰, 여행을 안내하다 | 트랙백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글만으로도 글곰님께서 어떻게 다녔는지 상상이 조금씩 되네요;
즐거우셨던 여행인거같구 무사히 잘 귀국하시기를 ^^
p.s 호주에있는 삐끼아저씨도 저에게 3개국어를 들이대더니 일본삐끼분들은 더 강력하군요;
아.. 이미 기본대화는 영어니까 역시나 같은수준일까요...(일어 중국어해보시곤 반응없으니 한국어로 학생? 할인해줄테니까 들렸다가 ^^ 라고....)
5일차부터 쉬어서 조금 낫긴했지만..;;;
신종플루 때문에 취소해야 할꺼 같은데... ㅜㅜ 일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떤지..?
꽤 민감해 보입니다. 마스크도 자주 보이고요.
저는 전혀 신경 안 쓰고 돌아다녔습니다. 으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