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장 3일차

  어제 행사가 피곤했었는지 늦잠을 잤습니다. 호텔의 아침 식사 쿠폰이 날아가 버렸네요. 천엔짜리인데! 눈물 뚝뚝 흘리며 짐을 싸 들고 요코하마역으로 향했습니다. 목적지는 정기운행 배편인 '시 버스'를 타는 선착장. 일본어로'시바스'라고 적어 놓았기에 당연히 바다로 운행하는 Sea Bus일 줄 알았는데 웬걸, Sea Bass지 뭡니까. 아무튼 원래 가까운 미나토미라이 선착장 바로 앞이 행사장이어서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배는 10분 전에 떠났고 다음 배편은 35분 후에나 있더군요. 잠시 고민하다가 다짜고짜 다른 곳으로 가는 배를 타 버렸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행선지를 변경하는 것도 나름 여행의 묘미겠지요.

  하여 배를 타고 20분쯤 가니 야마시타에 도착하더군요. 근처에 차이나 타운이 있다기에 직행. 전형적인 관광지 거리인 데다 온통 음식점뿐이라서 별로 볼 건 없더군요. 다만 관우를 모시는 관제묘가 있어서 잠시 참배를 하고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에서는 관우를 상업의 신으로 섬기지요. 십엔짜리를 던져넣고 로또 당첨을 기원했는데 글쎄요. 효험이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역시 눈 딱 감고 백엔짜리를 던져넣을 것을 그랬나요?

  행사는 어제보다 늦게 시작해서 훨씬 늦게 끝났습니다.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진행이었어요. 뒷처리를 깔끔하게 끝낸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교통편은 무려 택시. 저는 무려 일본에서 택시를 타 본 놈인 겁니다. 야간 할증이 붙어서 기본요금이 710엔인 데다 한번에 90엔씩 올라가는 미터기를 보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지다 못해 두려움마저 생기더군요. 길이 좀 꼬여있긴 하지만 전철로 다섯 코스 거리인데 무려 2150엔이 나왔습니다. 덜덜덜덜덜. 다시는 일본에서 택시를 타지 않으렵니다.

  자아. 이제 행사도 끝났고 내일 요코하마 시청을 다녀오면 공식 일정은 종료입니다. 그 후는 그야말로 여행이 되겠네요. 그런데 내일 제때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카운터에서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모닝콜을 부탁하긴 했는데, 예전에도 모닝콜 따위는 간단히 씹어버리고 잔 적이 종종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미국에서 일 때문에 고생이 많은 여자친구를 생각하면 너무 투덜거려서는 안 될 것 같네요. 그러니 얼른 짐 싸고 자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by 글곰 | 2009/09/07 01:28 | 글곰, 여행을 안내하다 | 트랙백 | 덧글(0)

일본 출장 2일차

  호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속옷 양말 빨아 널어놓은 후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제가 세탁까지 하면서 다니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네요. 대개 여행하는 날짜만큼의 속옷을 챙겨 다닙니다만, 이번에는 워낙 짐을 적게 싸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시시한 몰골로 밥을 먹은 후, 주변을 잠시 산책했습니다. 듣던 데로 자전거 주차장에 잔뜩 늘어선 자전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로을 달리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호텔 앞에는 폭이 10미터쯤 되는 개천이 있는데 물고기들이 의외로 많아 다리 중간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보니 물고기뿐만 아니라 해파리도 떠다니더군요. 아마도 바다쪽 하구에서 올라온 모양인데, 해파리가 민물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오전에 일을 위해 행사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세세한 내용이야 관심없으실 테니 넘어가고요.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 잠시 빡돌아버릴뻔 했지만 간신히 진정하고 이것저것 챙겨서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꽃보다 남자] 출연진을 보기 위해 약 4000명 가량이 운집했는데, 멀리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그 대단한 열정에 세삼스레 감탄했습니다. 일본에서 김현중의 인기야 원래 아는 바였지만 이민호도 그 못지않은 환호성을 끌어내는 것에 다소 놀라기도 했습니다. 행사는 원래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더 오래 진행되었고, 때문에 숙소로 돌아오는 시간도 그만큼 늦어졌습니다. 그래도 오늘 행사가 잘 진행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자카야 체인점에 들려서 술 탄 음료수 한 잔과 함께 안주들을 잔뜩 먹고 왔습니다. 일본어 이름이야 기억 못하겠고, 대강 닭튀김에 삶은 콩, 고등어, 오챠즈케, 참치 롤, 조개구이까지 정말 다양한 음식들을 뱃속에 밀어넣었습니다. 계산할 때 가격표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그래도 배가 부르니 행복하네요. 극락이 따로 없습니다. 이게 다 뱃살로 전환된다는 사실만 빼면요.

  그럼 내일도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먹겠습니다. 아마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바쁠 것 같아요. 주말에 일하는 것이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주중의 휴가를 생각하며 힘내겠습니다. 아자아자!

by 글곰 | 2009/09/06 01:02 | 글곰, 여행을 안내하다 | 트랙백 | 덧글(2)

일본 출장 1일차

  여기는 요코하마 한쪽 귀퉁이의 허름한 호텔. 좁아터진 방 안에서 의자 위에 쭈그리고 앉은 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일본에 출장을 왔어요.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사흘 반은 출장이고 이틀 반은 여행입니다. 금토일과 월요일 오전까지는 일을 하고 월요일 오후부터 수요일까지는 휴가지요. 그래서 일본에 있는 동안 매일 그날그날의 이야기를 정리해 볼까 합니다. 물론 제 취향답게 사진은 없습니다. 저는 어지간해서는 카메라를 안 가지고 다니니까요.

  어쨌거나 오늘은 호텔에 들어온 후 현장 답사를 갔다오는 것만으로 시간을 다 써 버렸습니다. 환승 한 번을 포함하여 지하철로 5코스를 가는데 4500원이 드는 무시무시한 일본 물가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군요. 밥도 후덜덜하니 비싸고 말입니다. 그래도 인터콘티넨탈 호텔 뒤편에서 쭈그리고 앉아 바라본 요코하마항(港)의 야경은 참 좋더군요.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뜬금없이 칠백엔짜리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요코하마 코스모월드라는 이름의 조그만 유원지가 있는데 놀이기구를 보니 갑자기 타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롤러코스터가 오르막을 오르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내리기 시작하는 비. 결국은 비를 맞으며 호텔로 왔습니다.

  오늘은 별로 한 일은 없네요. 내일부터는 고단한 일입니다. 그래도 아자 아자!

by 글곰 | 2009/09/04 23:12 | 글곰, 여행을 안내하다 | 트랙백 | 덧글(6)

그녀의 소녀시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FC 서울의 친선전이 열리고 있는 상암 월드컵경기장. 전반전이 끝나고 경기장이 어수선해지더니 사람들이 급하게 무대를 설치한다. 곧 무대로 올라가는 아홉 명의 소녀들. 육만 명의 관중이 빼곡히 들어찬 경기장에 울리는 노래는 <소원을 말해봐>. 그와 동시에, 내 옆에서 엄청난 환호가 폭발하듯 터진다. 꺄아! 소녀시대다 소녀시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러대는 이를 쳐다보다가 그 팔을 툭툭 치며 말한다. 좀 진정해요. 그러나 전혀 진정하지 못한 상기된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그녀는 다름아닌 나의 여자친구. 

  걸그룹의 팬이 꼭 남자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아마 소녀시대 팬의 98%는 남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내 여자친구는 나머지 2%에 들어가는 셈이다. 다리를 휘적휘적 저어대는 그녀들의 춤에 까무러치고, 어디선가 소녀시대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귀를 쫑긋 세운다. 아이팟에는 항상 소녀시대 고화질 동영상이 들어 있고 앨범 전곡의 음원을 구입해 고이 저장해두고 있다. 참 열성적인 팬이다. 좋아하는 가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소녀시대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소녀시대가 왜 좋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예뻐서"라고 답한다. 우문현답이다. 대부분의 남자 팬들에게 물어봐도 거의 같은 대답이 나올 것 같다. 예쁜 걸 좋아하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까울 테니까. 그래도 걸그룹의 여자팬이라 하면 뭔가 좀 어색하긴 하다. 애당초 연예인들은 대부분 이성 팬이 훨씬 많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 그뿐일 테니 뭐 어쩌겠는가. 오늘도 나의 여자친구는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는다. 예쁜 소녀들의 춤사위를 보며 헤벌레 웃고 있다. 그런 모습이 묘하게도 귀여워 나도 픽 웃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뭐, 예쁘긴 예쁘니까. 누가 누구인지 나는 도저히 분간을 못 하겠지만.

by 글곰 | 2009/08/10 00:03 | 글곰은 중얼중얼 | 트랙백 | 덧글(15)

UP,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라

  [스포일러 주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라. 좋은 말이지만 그만큼 자주 다루어져서 어쩌면 좀 식상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식상한 주제라고 해서 다루지 않아야 한다면, 세상 모든 영화 소설 드라마에서 사랑 이야기는 빠져버려야겠지요. 그러니 주제 자체보다는 오히려 그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더 중요할 겁니다. 

  최근에 엄청나게 쏟아져댄 일에 치여 살다가 간신히 여유가 생겨 영화 한 편 보러 갔습니다. 픽사의 [UP]. 간단명료하게 요약하자면 지나가버린 과거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헤메다가 마침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멋진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걸 풀어가는 방식이 명료하면서도 탁월하더군요. 그토록 아끼던, 사별한 아내와의 추억이 가득 담긴 의자를 미련없이 내버리고 하늘로 떠오르는 순간 그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어흑.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렇기에 이 영화가 그토록 큰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겁니다. 풍선을 가득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그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말해주는 영화였습니다. 멋졌습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by 글곰 | 2009/08/02 22:28 | 글곰, 취미생활을 하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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